[동영상] 북괴 도발사

'북괴 도발사' 티저


광복 이후 약 44만 건에 달하는 북한의 도발! 
그들의 도발을 유형별로 분석한 10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북한 도발사~!
前 인민무력부 정치보위대학 연구실장을 지낸 강명도 교수(1994년 탈북)가 진행을 맡고, 아웅산 테러 당시 현장 생존자와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 생포자 등 각 도발사건의 관련자들이 출연하여 생생한 증언을 더합니다.
북한 도발사, 매주 수요일 밤9시에 국방TV에서 방송됩니다.

[북괴 도발사] 1부
도발의 시작, 분단


한반도는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반세기 넘게 휴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향한 도발로 긴장은 여전하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건수는 약 43만건. 
이제는 국제 사회로 확대되어 세계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한이 언제부터 어떤 도발을 일으켜왔고, 도발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분석한다. 북한의 첫 도발은 6.25 전쟁이 아닌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 가결로 분열된 민족.
그리고 대한민국 건립을 막기 위한 좌익 세력의 도발이 시작되었다. 정판사 위폐사건, 이승만, 조병옥, 장택상 암살 시도, 10.1 대구 총파업 등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5.10 총선거를 막기 위한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6.25 전쟁 전 개성 송악산 전투, 옹진 은파산 전투 등이 일어났는데, 이는 국군의 전투력 실험을 위해 벌인 38선 국지전이었다. 이후 6.25 전쟁은 발발되었고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긴장 상태에 머물러 있다.

[북괴 도발사] 2부
두 얼굴의 북한, 화전양면


6.25전쟁이 끝난 후 북한은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으로 외형상 성공을 이루었다. 이후 1956년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그리고 1960년에는 남북연방제를 제안하며 화해모드에 돌입했다. 
하지만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최초의 항공기 납치인 창랑호 납북사건이 일으켰으며, 남북연방제 제의와 동시에 군사력 증강과 대남 도발을 준비했다.
이처럼 북한은 ‘민주기지노선’을 천명하면서 평화통일 제안과 함께 ‘남조선혁명’이라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였다.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울진, 삼척 무장공비침투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도발인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건들은 북한의 화전양면 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북괴 도발사] 3부
 휴전선에 걸친 도발


6.25 전쟁을 거치고 정전회담으로 인해 남북 사이에는 휴전선이 생겼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인 1960년대부터 북한의 휴전선 도발은 심각했다. 휴전선은 정전협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북한의 도발은 정전협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1967년 8월 미군부대 식당 습격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그리고 최근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게 했던 DMZ 목함지뢰 시건까지. 평화협정을 운운하지만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한의 휴전선 도발은 아직도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북괴 도발사] 4부
은밀한 침투, 간첩


우리 안으로 숨어들어와 보이지 않는 도발을 펼치는 간첩과 무장공비. 
1950년, 간첩 1호라 불리는 성시백이 간첩의 첫 시작이었다. 
북한은 대남공작기구인 인민무력부 정찰총국과 통일전선부 225부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간첩과 무장공비를 남파해왔다. 남파된 간첩들은 군사정보를 빼내는 것 외에도 남한에 혼란을 주기 위해 지하당을 조직했었다. 그리고 김현희와 무함마드 깐수와 같은 외국인 위장 간첩사건, 반잠수정 등 다양한 방법도 이용해왔다. 
현재는 간첩 체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은 변치않는 사실이다.

[북괴 도발사] 5부
적화통일로 가는 길 ‘땅굴’


1974년 9월. 귀순자 김부성에 의해 땅굴의 존재가 드러났다. 땅굴 탐사 끝에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된 너비 90cm, 높이 1.2m, 깊이 45m, 길이 3.5km의 땅굴이 발견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땅굴이 발견된 1970년대 초반에는 남북 적십자예비회담과 7.4남북공동성명의 발표로 우호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에도 1975년 제2땅굴, 1978년 제3땅굴, 1990년 제4땅굴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적화통일을 향한 북한의 행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북괴 도발사] 6부
 끝없는 도발의 시작, 해상도발1


북한의 도발은 육지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침몰과 같은 사건들은 1967년부터 이어진 북한의 해상 도발의 연장선이다. 
1967년 당포함 피침사건, 1968년 민간어선 납북 사건, 1983년 다대포 근해 반잠수정 격침사건,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과 같은 해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이처럼 NLL을 무시하는 북한의 행보는 엄연히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육지에 비해 은밀하게 진행 할 수 있는 해상도발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북괴 도발사] 7부
해상도발2 – NLL을 사수하라!


1953년 정전협정 직후 클라크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해상경계선인 NLL. 그리고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북한의 NLL 도발은 지속적으로 감행되고 있다. 이는 의도적인 무시이며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이 더욱 위협적이고 계획적인 도발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도발 행위는 서해 5도에 살고 있는 국민들까지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북괴 도발사] 8부
테러공화국, 북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9.11테러, 런던 지하철 테러, 프랑스 파리 테러, 벨기에 브뤼셀 테러 등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6.25 전쟁 이후 1958년 창랑호 납북 사건, 1967년 경원선 철도 폭파 테러, 1970년 국립묘지 현충원 폭파 미수 사건,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1978년 최은희, 신상옥 납치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사이버 테러까지 강행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북한의 테러. 그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북괴도발사] 9부
 핵과 미사일


제2차 세계대전에 일어났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인류 역사상 단 두 번뿐이었던 핵 투하이다. 
많은 사람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겼던 일이며 지금까지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에 미국이 발표한 한반도 핵전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 인구의 40만 명이 즉시 사망하고 방사능 오염으로 최대 500만여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북한의 핵 도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과 도발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북괴도발사] 10부
 핵과 미사일2


1990년대 이후 북한의 핵도발은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고 올해 2월 북한은 4차 핵 실험을 공개하며 수위를 더 높였다.
김정은의 집권 이후 강조되었던 핵과 경제 병진 노선에 대해 강조한 이번 7차 당대회에서는 특히 자신들이 핵 보유국임을 명시하는 발언과 더불어 우리와 국제사회를 겨냥한 도발도 서슴지 않고 있다.

[북괴도발사] 11부
 하이라이트 1


6·25 전쟁 그리고 정전협정 이후 60년 동안 끊임없는 도발을 일으켜왔다. 앞에서 평화를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종류의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 북한은 왜 도발을 일으키고 도발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도발사를 다시 되짚어본다.

[북괴도발사] 12부
하이라이트 2


해상도발 테러, 핵과 미사일! 
이제는 세계안보까지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